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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쿠로츠키 1월호]

 

내게 모든 처음을 선물한 당신에게.

@sh17_578

 

 

 

 

 

 이건, 아주 이기적인 이야기야. 동시에 아주 바보 같은 이야기이지. 일기장에 쓰는 바보 같은 편지. 받는 이가 일기장인 건 아니야, 나는 안네가 아니거든.

 

 그래요, 쿠로오 씨. 감히 만나기도 힘든 사람에게 보내는 바보 같은 마음. 동화책을 읽듯, 건너 아는 누군가의 경험담을 읽듯. 그렇게 잠깐만 간직하고 잠깐만 기억해줬으면 해요.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제목은 뭐가 좋을까요? 끝나지 않은 사랑 이야기, ……진부한 건 싫은데. 다 쓰고 나서 생각해보도록 할까요? 읽으면서 맞춰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사담이 길었죠. 어쩐지 창피해져서. 정말로 시작할게요, 아주 이기적이고 바보 같은 이야기를.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당신은 3학년이었죠. 겨우 두 살 많은 주제에 항상 여유롭던 사람. 이상한 구호로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던 사람. 확실히 첫인상은, ……고양이. 기분 나쁜 검은 고양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뭐, 당신도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요. 당신은 내게 조금은 고등학생다워도 좋을 텐데, 같은 말을 했죠. 항상 어른스러워야 한다며 자신을 다잡던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 듯이.

 내가 당신에게 빠졌던 건, 아니.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던 건. 그 후의 일. 합숙이었나요? 벌써 몇 년도 전의 일이라서 헷갈려. ……그래, 당신과 보쿠토 씨의 블로킹 연습에 강제로 불려가서는 연습했었죠. 어릴 때부터 줄곧 나를 괴롭히던 기억 덕에, 자율 연습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아두던 나였는데. 나는 당신에게 블로킹을 배웠어요. 나아가서는 보쿠토 씨에게 배구의 즐거움을 배웠죠. 말하지 못했지만요, 고맙다고는 써둬야 할 것 같네요. 고마워요. ……. 그래서, 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된 이유요.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나를 당신들의 연습에 끌어들이는 게 귀찮지 않아졌고. 내 눈이 유연한 당신의 등을 좇았고. 당신과 이야기를 하는 것뿐인데도 가슴이 뛰었고. 바보 같은 감정의 연속이었지만 싫지 않았어요. 그래서 미칠 것 같았어요.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부정도 해보고, 당신을 피해도 봤는데. 당신은 뭐든 안다는 듯했죠, 이런 내 감정까지. 떠나는 날, 울 것만 같았어요. 아쉬워서. 이제는 부정도 못할 만큼 떨리는 심장이 미워서. 당신이, 급하게 뛰어와서는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했으니까.

 그 뒤로 우리는 한 발짝 나아간 사이가 되었죠. 가끔 문자를 하다가, 전화하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그 먼 거리를 이기고 만나는 사이. 나는 당신을 좋아하는 채였고.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몇 번씩이나 했었고. 당신은 내가 보고 싶다는 말로 나를 흔들었죠. 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만 같아서, 일부러 연락을 무시한 적도 있었고요. 무슨 일 있냐며 걱정하길래, 그냥 몸이 조금 아프다고 둘러댔더니, 다른 일은 다 내팽개치고 미야기까지 오기도 했잖아요.

 그때 알았어요. 나도 당신에게 있어서 특별한 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당신도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당신도 나와 같은 연애 감정이라는 건 꽤 뒤에 눈치챈 일이지만요.

 그리고, 당신의 졸업식. 다행히도 우리 학교 졸업식의 다음 날이었으니까요, 선배들 몇 명에 히나타까지 함께해서 갔었죠. 꽤 오랜만의 만남이었는데도 어색하지 않았어요. ……어색해지기는 했죠. 함께 저녁을 먹고, 내가 다시 돌아갈 때가 되었을 때. 다음에 또 보자, 당신의 말에 고개를 내젓고는 그렇게 말했어. 다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항상 여유롭던 당신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져서는. 꽤 웃겨서 나도 모르게 소리 내서 웃었죠. 그런 내 웃음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게 무슨 소리냐고 말하는 당신은 조금 무서웠지만.

 기억나요? 내가 했던 말. 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어요?

 

「쿠로오 씨를 좋아해요.

어설픈 동경 같은 게 아니라, 연애의 대상으로 본다는 의미예요.

물론 당신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래서 이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마음을 정리하려면. 당신이 눈앞에 자꾸 보여서는 안 되니까.

고마웠어요, 정말로 안녕.」

 

 뭐,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대충 저런 대사였다고는 생각해요. ……완전 창피하네. 아무튼. 저런 부끄러운 대사를 내뱉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데. 당신이 내 이름을 불렀어요. 정말 크게, 아주 크게! 츳키, 부르는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깜짝 놀라서 뒤돌아봤더니. 당신은 미친 듯 고개를 젓고 있었죠.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

 당신이 뭐라고 말했는지. 

 

「츳키를 좋아해.

포기하지 말아줘, 그 감정을 영원히 해줘.

나도 영원히 사랑할 테니까.」

 

 정말 이기적인 건 내가 아니네요.

 그렇게 우리는 교제를 시작했어요. 매주 만나서, 손을 잡고, 껴안고, 키스하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그렇게 사랑을 했어.

했어요?

 나만의 시간은 아니었길 바라.

 언제였지?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졸업을 하고, 당신이 점점 바빠질 시기에. 전부 내 몫이 되어버린 연락과 만남에 지쳐갈 때쯤에. 당신은 내게 딸기 쇼트케이크와 이별을 선물했어요.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다, 당신도 그러길 빌면서.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한 방울의 눈물도 없이 우리는 헤어졌어요.

 내가 정말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헤어지고 싶지 않았어. 나만의 감정이라도 좋으니 당신의 소매를 쭉 붙잡고 싶었어. 바보 같지만 내게는 당신이 처음이었는걸. 사랑도, 키스도, 그보다 조금 나아간 것들도. …너무 나아간 이별까지도. 이렇게 많은 처음을 준 사람을 내게 어떻게 잊겠어?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약속했던 당신을 내가 어떻게. 어떻게 지우겠어? 당신이 다른 사람과 행복할 미래를 내가 어떻게 응원하겠냐고. 맞아요, 이 일기의 목적은 단 하나. 아직도 품고 있는 이 바보 같은 감정들을 전부 당신에게로 돌려보내는 거예요. 나를 잊었을 당신처럼, 나도 당신을 잊을 수 있도록.

 정말 많이 사랑했어요. 그래서 미워요. 사랑한 만큼 당신이 미워요.

 그렇지만 역시.

 미운 만큼 사랑해요.

 맞다, 제목. 제목은 뭐로 하는 게 좋을까. ……. 갑자기 유치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어차피 당신이 볼 것도 아니니까요,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내게 모든 처음을 선물한 당신에게.」

 

 마지막까지 정말 바보 같다. 일기장을 덮으면서 내 마음도 덮으려고 했는데, 조금 더 기다려야겠네요.

 미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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